홈>복지관이야기>복지관 동향
"함께, 그 길을 열다"
서울시동남보조기기센터 개소 10주년 기념 영상 <10년을 함께, 미래를 함께 2008~2018>
서울시동남보조기기센터 -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201 / 1599-0420 / www.seoulats.or.kr
설립 : 서울특별시 (2008) / 운영법인 : 푸르메재단
서울시동남보조기기센터
안녕하세요. 저는 뇌병변 장애아이를 갖고 있는 심승재엄마 입니다.
서울시 신당동에 살고 있는 송광연이라고 합니다. 지금 주차관리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건국대학교 행정과 2학년에 재학중인 김민호라고 합니다.
최행숙 님 : 저희가 센터를 처음 찾은 게 2013년도 였구요. 승재가 목욕의자가 필요해서 승재를 항상 씻길 때 온 집안에 가족이 동원이 돼서 협력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저 혼자서 얼마든지 목욕의자에서 씻길 수 있거든요.
김민호 님 : 제일 처음으로 했던 게 아마 스탠더 대여를 했던 거 같고, 저희 집이 계단인데그 스탠더를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두 분이 드시고 진짜 고생하셨죠...
송광연 님 : 랩보드 제작, 가슴벨트, 골반벨트, 자세교정, 직장생활하는 데 있어서 너무 편리해 졌고요, 삶의 질이 높아져서 …
2002년. 2003년 준공된 직업훈련실, 생활훈련실, 공사현장
2008년 이 공간에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2008년 12월 16일 서울보조공학서비스센터 개소식(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서울동남보조기기센터 10년,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입니다
김명순 수녀(개소 당시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장)
(보장구전시실이) 한 방이 7평인데 (총 크기가) 21평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게 작은 평수가 아니었죠. 그렇게 있었는데 그 때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구나' 하는 그 선 이었지, 그게 정말 장애인들에게 삶을 바꿀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어요.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개관 초기부터 마련되어 있던 한 공간...보장구 전시실 1982
곽재복 관장(개소 당시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기획실장)
돌아가신 오길승 박사님께서 “앞으로는 보조공학이다.” 그래서 (관장)수녀님께 이 보조공학의 필요성을 꼭 전달해 달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자리에 같이 있었어요.
김명순 수녀 : 오길승 선생님이 그 얘기를 했어요. 수녀님 모르시죠? 이 기분 (고 오길승 교수)가 미국 갔을 때 처음으로 차를 샀대요. (차를 타고) 바깥으로 나갔는데 그 기분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너~무나 자기는 행복해서 시간만 있으면 나갔대요.
곽재복 관장 : (그 얘기를 듣고 나서)저도 앞뒤 재지않고 “수녀님, 이거는 해야됩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국내1호 재활학박사 고 오길승 교수(한신대학교)
2004년, 오길승 교수는 경기도에 보조공학센터를 연다. 서울에는 아직 없었다
TFT 2007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보조공학 TFT를 만들다
김미정 중원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당시 서울보조공학서비스센터장)
복지관 안에서 보조공학에 대한 필요성들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복지관 안에 TF팀이 결성되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치료교육부 부장님이였던 김상진 선생님, 이미경 재활의학과전문의 선생님 필두로 해서 치료교육부 김귀선 팀장님, 고명숙 팀장님, 그리고 직업재활하는 저까지 같이 해서 TF팀이 활동을 하게 됐었죠.
곽재복 관장: 우선은 작업치료영역 쪽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먼저 타당성 검토를 하자. 그래서 일정기간 프로젝트 기간을 줄터이니 그걸 해봐라 해서 연구를 쭉 해서 나중에 결과를받아본 결과 '아, 이거는 해야 된다'는 그런 결론이 나왔어요.
보조공학TFT에서 보조공학팀으로
장애인맞춤PC사업으로(NHN지원) 처음으로 보조기기를 지원하다 (2007-2009)
김미정 교수 : 여러곳에 보조기기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들을 한 끝에 NHN에서 진행하는 '맞춤PC사업'에 저희가 연결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역사회에 계신 장애인 분들에게 실제로 보조기기를 지원해 드리는 일들을 하게 됐죠.
김명순 수녀 : 저녁에 이제 기도 다 끝나고 보니까 불이 아직도 김미정 팀장이 있는거 같더라구요. 불이 있더라구. 그래서 거기를 갔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하고 있어서 그래서 “왜 그래?”그랬더니 “수녀님, 이걸 좀 보래” “그래 뭔데?” 보니까 팀장님 힘내시라고 건강하시고 건강챙기고 힘내시라는 그런 메일이 왔어요. “수녀님, 이게 누가 보낸건지 아세요?” 그래서 “누가 보냈는데?” 그랬더니 “(맞춤PC를 받은)장애인 분이 안구 마우스로 (메일을 타이핑 해서) 보내준 거예요." 근데 저도 가슴이 딱 멎는것 같아요. 심장이 멎는 것 같아. 그때‘아 진짜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분들에게…’
장애인의 삶에 중요한 것을 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다 (2008)
김명순 수녀 : 곽실장님하고 서울시에도 들어갔었고 보건복지부에도 갔어요. 그래서 “이거는 시나 보건복지부에서 해야되는 일 아니냐? 이게 한 복지관에서 할 일이 아니다.” 그랬더니 시작을 하시면 아마 그건 꼭 해야되는 일이니까.
곽재복 관장 : 당시 서울시에 팀장님이 유시영 팀장님인데, 유시영 팀장님이 오길승 박사님하고 유럽을 시찰을 하셨는데 그게 보조공학을 테마로 시찰을 하고 계신 거예요.
유시영 원장(당시 서울시 장애인직업재활팀장)
제일 기억에 나는 게 독일에 갔을 때인데, 그때 (현지에서) 휠체어를 빌리는데 제 몸을 완전히 분해하더라구요. '체중이 몇 킬로그램이 나가느냐.', '손 길이가 얼마나 되느냐.', '손에 힘이 얼마나 되느냐.' 뭐 이런걸 다 분해하더니 한 45분 걸려서 휠체어를 완전히 조립을 해서 날 주더라고요. 그걸 보고 뭘 느꼈냐 하면..'우리도 (장애인복지)서비스를 할 때 뭔가 개인이 특성에 맞는 서비스가 필요하겠다.’ 국장급이나 부시장단에 이것(보조공학서비스)를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그리고 의원들한테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저희들은 한계가 있으니까 오히려 저희들이 요청을 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리고 또 그때 당시에 보조기기센터에 대한, 설립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것이 좀 매치가 되면서 관장님께서 직접 몸으로 뛰실 때 저로서는 단순하게 옆에서 그냥 서포트 해드린 것 뿐이고 그분이 직접 의원들도 설득하고, 국장단도 설득하고, 뭐 이런식으로 해서 진행이 된거지 저희들이 막 요청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고 서울시보조공학서비스센터
서울시, 서울시보조공학서비스센터를 운영할 곳을 찾다(2008)
김명순 수녀 : 브리핑하는 날, 오후에 우리 차례에 들어갔는데 김미정 팀장이 브리핑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 잘했어요. 제가 ‘이야~ 대단하다. 우리 직원이지만 진짜 잘하는구나’ 그렇게 해서 박수를 얼마나 받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너무 그때 기뻤어요. 그래서 어쨌든 우리가 최고 점수 받았고...
곽재복 관장 : 무슨 용기로 그 2년이라는 기간 동안 투자하고, 이렇게 할 생각을 했는 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수녀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약간 무모한 도전처럼 이렇게 했는데 그 당시에 스태프들이 열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거는 해야 된다는 우리의 상층부의 생각도 있지만, 실무자가 그걸 주춤 거렸으면 아마 일이 이루지지 않았을텐데 그 당시에 김미정 선생님이 아주 열정을 가지고 했고, 지금 돌이켜 보면 저 위에 계신 어떻게 보면.. 수녀님들하고 있으니까 하느님께서 다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셔가지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는 거기에 팀장님, 과장님..또 뭐 이렇게 예산이 또 당시에 있고.. (하늘의 섭리가 아니면)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는건 좀 어려웠죠.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보장구전시실의 바람이 서울동남보조기기센터만의 특별한 동행으로